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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나리는 한국 이민자 가족이 느끼는 삶의 애환을 담담하게 담아냈습니다. 아메리칸드림이라는 부푼 꿈을 안고 이민을 왔으나 현실은 냉혹합니다. 영화에서 그런 부분들이 잘 드러냈습니다. 영화 미나리는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상을 많이 받았습니다. 또 골든 글로브에서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아카데미에서 윤여정 씨가 여우조연상을 받았습니다. 해외에서 영화 미나리에 열광적이었습니다. 특히 미국에서 영화 미나리에 열광적이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미나리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무엇이었을까요?
왜 미국이라는 나라는 미나리의 집중했을까요?
결국 이 영화는 미국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감독의 국적이나 제작사의 국적이 미국이라는 게 아닙니다. 미국인들이 지닌 정서에 크게 어필하는 작품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우리가 흔히 이민자의 나라라고 부릅니다. 이민자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이민자들을 폭넓게 받아들이기로 유명한 국가입니다. 미국은 세계 최강의 대국이자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입니다. 많은 이민자들이 소위 아메리칸드림을 찾아오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 아메리칸드림은 미국인들의 자부심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메리칸드림의 어두운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 것도 사실입니다. 그 그림자 안에서 아시아 특히 한국이라는 나라는 늘 소외되어 있었습니다. 인종의 문제를 많이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솔직히 인종 차별을 말할 때 늘 이슈가 되는 것은 흑인입니다. 히스패닉이나 아시아 인종은 그다음이었습니다. 최근 한국 영화를 바라보는 미국의 시선은 어쩐지 쑥스러운 유행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지금껏 미국인들에게 아시아는 오리엔탈리즘의 대상에 불과했을지도 모릅니다. 시간이 지나 지금에서야 비로소 아시아인을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미나리의 흥행에서 미국이 지닌 부채 의식을 엿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한국인 이민자 가족의 삶과 애환을 그린 영화
영화는 미국 아칸소 제이콥 가족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차를 몰고 이동하는 제이콥 가족은 아칸소로 이주합니다. 이들은 원래 캘리포니아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물론 제이콥의 꿈입니다. 한국의 작물을 키우는 농사를 해서 성공하겠다는 꿈입니다. 하지만 다른 이유는 삶의 팍팍함입니다. 제이콥은 병아리 감별사입니다. 캘리포니아에서도 제이콥은 병아리 감별사였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삶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모니카도 맞벌이를 하려고 하지만 모니카는 손이 느려서 캘리포니아에서는 일할 수 없었습니다. 모니카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도시인 캘리포니아에서 살고 싶지만 현실은 여의치 않습니다. 가족이 도착한 곳은 허허벌판입니다. 풀이 무성한 불모지 같은 인상을 줍니다. 그곳은 아무도 살지 않고 이웃집이 전혀 보이지 않는 땅입니다. 그 땅을 산 제이콥은 모니카와 아이들에게 보여주기라도 하듯 흙을 두 손 가득 들어 보이며 좋아합니다. 하지만 그 이후 드러나는 것은 고통스러운 현실입니다. 트레일러를 개조해서 집을 만들었습니다. 그들의 처절한 현실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모니카의 참담한 심정도 이해됩니다. 아이들을 이런 곳에서 키워야 한다고 하면 어떤 사람이 반기겠습니까? 아무것도 모르고 좋아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모니카는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봅니다. 그리고 남편의 손을 잡고 힘겹게 트레일러를 오르는 모니카의 모습이 아프게 다가옵니다. 제이콥의 가족은 트레일러 집에 자리를 잡습니다. 딸 앤에게 우리는 이 집에서 금방 나갈 거라고 말한 모니카는 금방 공포와 마주합니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폭풍이 도래하자 집이 위태롭게 흔들립니다. 설상가상으로 물이 새서 가구는 다 젖습니다. 제이콥은 토네이도를 두려워합니다. 이 부분이야말로 제이콥의 가족이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위태로운 둥지에서 어떻게든 부리를 비비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니카와 제이콥의 격돌도 종이비행기에 편지를 쓰는 아이들의 노력도 모두 슬프게 보입니다. 그럼에도 살아가야 합니다. 병아리 감별사의 일은 캘리포니아와 아칸소의 차이를 보여주는 동시에 미국이라는 사회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병아리 공장에는 이상하게 아시아인들이 있습니다. 교회에는 백인들이 있습니다. 아시아 가족은 희귀합니다. 하지만 병아리 공장에서는 누구도 아시아인을 신기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시 미국 사회에서 아시아 인종이 처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이콥이 모니타에게 여기서는 그 정도로도 충분하다는 말을 합니다. 캘리포니아와 같은 미국의 중심부에서 밀려나는 한국인 이민자들의 모습을 표현하는 말처럼 들립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부족하지만 아칸소에서는 괜찮다는 말은 참 처량하게 들립니다. 데이비드는 모니카와 제이콥의 걱정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아슬아슬한 삶을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제이콥과 모니카의 입버릇이 데이비드 뛰지 마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듯 마음껏 살기 어려운 한국인의 현실이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선천적인 심장병을 앓고 있는 데이빗을 돌보기 위해 한국에서 순자가 날아오며 이야기는 본격화됩니다.
순자와 데이빗의 이야기
순자와 데이빗의 이야기는 평범한 할머니와 손자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보편성을 획득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할머니가 손주들을 예뻐하는 것은 동서고금 어디에서나 통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데이빗은 처음 보는 할머니가 낯설어서 엄마 뒤에 숨습니다. 엄마가 가져온 고춧가루며 멸치며 보약이며 미나리에 왈칵 울음을 보이는 모니카도 너무나 정겹기만 합니다. 데이빗이 순자에게 소변을 먹입니다. 순자는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장면 등이 펼쳐집니다. 데이빗은 순자에게 말합니다. 할머니는 할머니 같지가 않다고 합니다. 한국의 할머니는 미국의 할머니와는 다른 것이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쓴 보약을 끓여서 먹이고 손자와 고스톱을 치고 한국 냄새가 납니다. 데이빗에게는 한국의 냄새가 생소하고 어딘지 모르게 이상합니다. 제이콥의 도전도 이어집니다. 한국전에 참전한 경험이 있는 이웃과의 만나게 됩니다. 주일이면 십자가를 짊어지고 다니는 괴상한 인물이지만 제이콥은 기꺼이 그에게 일을 줍니다. 한국을 아는 한국을 경험한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정서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이콥은 결국 식수로 사용할 물을 길어와서 농사에 씁니다. 모니카는 그걸 다 알고 있습니다. 물이 나오지 않는 이유도 알고 있습니다. 제이콥은 이 농사에 모든 것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모니카와 제이콥
모니카가 제이콥에게 서운함을 느끼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떻게 보면 남자와 여자의 말하기 방식의 차이를 드러내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모니카와 제이콥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다름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제이콥은 지독히 현실적으로 생각합니다. 제이콥에게 돈과 생존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그게 수반되어야만 가족도 성립 가능하다고 여깁니다. 그렇게 제이콥은 현실을 기반으로 성공을 꿈꿉니다. 반면 모니카가 듣고 싶은 이야기는 이상적인 것입니다. 제이콥이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모니카를 가족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그 의지가 듣고 싶은 겁니다. 둘의 바람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제이콥은 농사로 성공하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모니카는 제이콥이 가족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꿈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굴뚝의 연기를 궁금해하는 데이빗에게 쓸모 있느 수컷이 되어야한다고 말합니다. 쓸모 있는 수컷이 되지 않으면 버려진다는 것입니다. 제이콥은 그런 사고방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모니카의 앞에서 보란 듯이 성공하고 싶은 겁니다. 쓸모 있는 수컷임을 증명하는 것이 제이콥의 삶의 목적이고 바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데이빗의 심장이 기적처럼 나아지고 있습니다. 데이빗의 심장은 그 자체로 미나리와 연결되고 있습니다. 미나리는 연약해 보이는 식물이지만 어디서나 잘 자랍니다. 그 미나리처럼 연약해서 금방 부서질 것 같았던 데이빗의 심장은 조금씩 나아져서 이제는 회복되고 있습니다. 결국 데이빗은 할머니를 향해 달리기까지 성공합니다.
불행앞에서 더 단단해진 가족
데이빗이 할머니에게로 처음 힘차게 달려간 날 집에 불이 납니다. 그리고 할머니에게 불행이 찾아옵니다. 그 모든 것이 하나로 뭉쳐지는 장면은 미나리의 명장면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어느 날 순자는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됩니다. 순자가 불을 내는 장면도 영화 초반부터 암시된 불행이었습니다.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았던 가족의 위기는 오히려 불행 앞에서 더 단단해집니다. 순자는 그런 가족의 모습을 무심하게 바라봅니다. 그 눈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요? 왜 순자는 가족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었을까요? 영화는 순자의 불행에 답을 주지 않습니다. 순자는 죽었을까요?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다시 봄은 옵니다. 데이빗과 제이콥은 순자가 미나리를 심어둔 곳에 가서 할머니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가족이 다시 즐겁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결국 제이콥은 그 농사를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을 겁니다. 하지만 영화는 회복된 데이빗의 심장처럼 어디서나 잘 자라는 미나리처럼 제이콥 가족도 아칸소에서 잘 해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해줍니다.
등장인물들의 열연
영화의 연기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데이빗은 너무 귀엽습니다. 제이콥을 연기한 스티븐 연에 대해서는 칭찬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국인 배우인 그에게 한국어 연기는 아주 부담되는 것이었을 겁니다. 인터뷰에서도 한국어 연기가 부담되어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스트레스와는 별개로 스티븐 연예 한국어는 너무나 자연스러웠습니다. 모니카와 싸울 때 화면 밖에서 외치는 제이콥의 말은 좀 어눌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 나오는 장면들은 완벽했습니다. 특히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역시 회초리 가져와 장면입니다. 이 장면은 그야말로 아버지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한국의 아버지와 미국의 아버지는 전혀 다른 존재입니다. 데이빗은 아버지의 준엄한 명령에 회초리를 찾으러 갑니다. 지극히 한국적이고 평범한 가족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즐거웠습니다. 결국 데이빗은 회초리처럼 휘어지는 가느다란 풀을 들고 옵니다. 데이빗의 귀여운 모습 앞에서는 아버지의 무서운 화도 누그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버닝에서는 어눌한 한국어를 구사했습니다. 미나리의 한국어 연기를 보고 진짜 깜짝 놀랐습니다. 한예리의 섬세한 내면 묘사는 왜 그녀가 한예리인지 보여주는 대목이라 생각합니다. 그녀는 비닐봉지에 바리바리 싸온 친정 엄마의 정 앞에서 왈칵 눈물을 흘립니다. 제이콥과의 감정을 터뜨리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역할상 수동적인 한국인 아내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 내내 제이콥도 가족들도 그녀의 눈치를 보게 만드는 강한 설득력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윤여정의 연기는 지금껏 윤여정이 보여준 다른 여러 연기들처럼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윤여정이라는 배우를 잘 아는 한국인 관객이 보기에는 그리 특별할 것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윤여정을 처음 봤을 겁니다.그렇다면 분명 충격적일 정도의 연기로 보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욕설을 말할 때 평소에 윤여정 답지 않게 발음을 과장되게 크게 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마도 미국인 관객들을 고려해서 그녀답지 않게 큰 연기를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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